뜬금없지만 자기반성을 해본다. 왜 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잠시 후에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는 걸까? 왜 나는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계속 미루고 있는 나를 보게 되는 걸까? 나의 어디가 잘못되었길래 그런 걸까? 이런 생각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같은 행동을 반복할까? 그 답을 드디어 찾은 것 같다. 클루지에서 말이다.
작심삼일의 고통
달력을 보니 오늘은 2023년 3월 1일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 나름 연초에 세워두었던 계획과 몇 가지 목표는 어느새 사라지고 자리에 없다. 항상 이런 식이다. 내 뇌는 내 의지와 같지 않다. 내 의지와 다르게 중요한 것들을 제멋대로 지워버린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지는 모르겠다. 이럴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건 자기 위로라는 녀석이다. 아주 능숙하게 나를 다독인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고, 다들 그래. 그게 사람이야. 너무 자연스러운 거야. 안 그러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거야. 아주 독한 사람들이지. 그런 사람들이랑은 말도 섞지 마.' 오늘만큼은 이 자기 위로라는 녀석에게 속아주지 않을 생각이다. 내 편이 되어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 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다. 그렇게 넘어가주는 게 스트레스 안 받고, 마음 편하니까 그동안 넘어가 준거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무한반복일 거라면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나에게 붙어있는 우유부단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다. 매번 이렇게 작심삼일을 반복할 수는 없다. 불편하더라도 이번에는 철저하게 파헤쳐보자. 왜냐하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 아이들에게도 허락하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이 작심삼일 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글은 시간이 지나서 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중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미리 해두는 기록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럼 어디를 살펴봐야 작심삼일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 수 있을까? 내 의지를 살펴봐야 할까, 아니면 내 머리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목표와 계획이 너무 과했나? 결론 먼저 말하겠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의지나 내 머리의 문제도, 목표와 계획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원인을 알려면 우리 뇌의 진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조금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아주 오래전 보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뇌에게 맡겨진 첫 번째 임무는 신체의 정상적인 작동을 담당하는 일이었다. 이때의 뇌는 파충류의 뇌와 다르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심장이 뛰고, 숨 쉬고, 먹고 자게 하면 되었다. 그다음 단계에서 뇌는 좀 더 복잡한 기능이 필요했다. 인간이 사냥을 하고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면서 뇌에게 두 번째 임무가 맡겨진다. 바로 위험을 감지하고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일이 그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은 뇌에게 새로 맡겨진 임무의 결과였다. 뇌의 진화는 처음의 뇌를 리셋하고 새로운 뇌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뇌를 리셋하면 신체는 작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죽는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뇌 위에 두 번째 뇌가 덧씌워지는 진화 과정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선택은 뇌의 오류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흘러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지금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이 필요한 시대이다. 거기에 더해서 상상하고, 실행하는 것이 생존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전의 뇌는 변화를 거부하고, 가장 늦게 더해진 뇌는 변화하라고 명령한다. 뇌에서 서로 싸우는 상황이다. 뇌의 진화 과정에서 생긴 오류, 바로 이것이 작심삼일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것이 범인이다.
클루지
책 클루지를 통해 이제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클루지라는 단어는 서투른 또는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인간의 뇌가 클루지적인 진화를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계속 생존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뇌의 이전 상태를 정리하고 새롭게 구조와 기능을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클루지에 대해 알았으니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이다. 클루지에 대해 몰랐다면 반복되는 나의 작심삼일은 대처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잘못된 원인 파악과 대책을 세우느라 더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 낭비를 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런 시행착오도 결국에는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과정일 수 있으나 내 경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가능하다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이 좋다. 클루지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이제는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갑자기 하기 싫어진다거나 변화를 거부하는 이 감정은 클루지니까, 나는 이것만 극복하면 되는 것이다. 적을 알았으니 이기는 건 한결 쉬워졌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매일 30분씩 독서를 하기로 했다면 작심삼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30분 동안 책을 본다는 것은 나한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20분으로 줄여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매일 짧더라도 내가 정한 시간 동안 독서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습관으로 만든다면 더 이상 독서에 대한 내 작심삼일은 없을 것이다. 현재 나한테 가장 어려운 것은 글쓰기이다. 보물 창고라는 이름을 붙인 이 블로그에 보물을 차곡차곡 담아서 나중에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당연히 꾸준히 글을 써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다. 글쓰기는 나에게 큰 사냥 도구가 될 거라는 걸 알지만 내 몸과 마음이 거부하고 있다. 이건 클루지다. 그럼 이 녀석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지금은 하루에 글 한 개를 쓰는 게 너무 힘드니까 15분 알람을 정해서 글을 써 보자. 분명히 내가 거부할 것이고 처음에는 15분 동안 몇 글자도 못 쓸 것이다. 중요한 건 계속하는 것이고, 그렇게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제 나는 작심삼일을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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